<조선인 갱부 일본인 갱부와 난투> 1919년(다이쇼 8년) 7월 11일 자 도요 히노데 신문
낮잠을 자고 있던 조선인 갱부에게 일본인 갱부가 장난치다 상처를 입히고 말아 사죄하였으나 조선인 갱부가 복수를 위해 대거 들이닥쳐 대 난투를 벌임. 이로 인하여 일본인 갱부 3명이 상해죄로 검찰 송치됨.
도요 히노데 신문(1918년<다이쇼 8년> 7월 11일 자)
저작자:자료제공:국립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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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갱부
일본인 갱부와 난투
항외 하시마 탄광 모리시타 초키치(森下長吉) 헛간의 갱부, 본적 에히메현 기타우와군 아이지무라(愛媛県北宇和郡愛治村)의 야마나카 시게히로(山中重弘, 31)는 지난 6일 오후 2시경 동갱 납량 장에서 당시 아베 초자부로(阿部長三郎) 헛간의 갱부 조선인 허주석(許周石, 23)이라는 자가 탁자 위에서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장난삼아 탁자를 흔들자 이 반동으로 허주석이 바닥에 굴러떨어져 오른쪽 무릎에 3일 요양을 해야 하는 상처를 입었고 시게히로도 매우 놀라 여러 번 사죄하고 그 자리는 무사히 끝났다고 생각하였기에 자기 헛간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사이 이 소동을 알게 된 20~30명의 조선인이 허주석을 위해 복수하겠다고 들이닥쳐 바로 시게히로의 손발을 잡아 자기들의 헛간에 포로로 끌고 가려고 했을 때 갱부 총대표인 니미 단지(新見團二)와 마주쳤고, 그가 중재에 나섬으로써 마침내 조선인들의 분을 삭이고 시게히로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집념이 강한 조선인들은 이번에는 몇 배나 되는 인원이 함성을 지르면서 다시 한번 밀어닥쳐 니미 총대표의 가슴팍을 잡고 휘두르는 등의 폭행을 가하자 이에 크게 분개한 일본인 갱부들이 나타나 조선인 갱부 단(團)과의 대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단속사무소 앞문에서 쌍방이 뒤섞여 대 격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특히 쓰쓰미 야사부(堤弥三郎)로 헛간의 갱부 키타마쓰우라군 시카마치무라(北松浦郡鹿町村)의 스즈키 도미키치(鈴木富吉, 24)가 조선인 갱부 김남수(金南守, 23)와 싸우고 있을 때 조선인 김영석(金永石, 29)이 이를 도우러 도미키치에 쳐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위험하다고 느껴, 결국 쓰쓰미 헛간의 본적 히로시마현 미쓰기군 후카다무라(広島県御調郡深田村)의 호다이지 도시로(法代寺藤四郎, 33)가 도미키치를 돕기 위해 갑자기 칼을 휘둘러 남수와 영석의 머리와 등을 베었다. 남수는 전치 요양 4일, 영석은 5일을 필요로 하는 상처를 입었으며, 또한 도미키치가 남수의 머리 등을 게타(下駄)로 내리치는 소동이 되자 부장파출소와 탄광 임원 등이 모두 나와 쌍방을 진정시켰고 일본인 갱부 중에는 한 명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하여 시게히로, 도시로, 도미키치의 3명을 어제 상해죄로 우메가사키서에서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
(다이쇼 8년 7월 11일)